베트남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1)


필자에게 베트남 이라는 나라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월남 전쟁과 공산화가 유일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 단어들은 베트남의 현대사의 한 짧은 기간동안에 있었던 일일뿐이다.

이 나라의 역사가 BC207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2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약 1000년동안의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영향인지 언어에서도 중국 한문의 흔적이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잠시 왕조의 형태로 나라가 회복되더니 다시 중국의 지배를 당하게 되고 

이어 여러 전쟁들에 휩싸이다가 1880년대 프랑스 식민지로 거의 70년을 지난후 다시 중국과 전쟁, 이어 미국과의 전쟁을 거쳐 이제 공산화된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게된다.

<함께 동행했던 Tu베트남 목사님>


이번 필자의 여정에는 특별한 베트남 목사님이 함께 하였다.

투(Tu) 드롱이란 목사님으로 이분은 미국 파사디나에 소재하고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분인데

미국 캄톤시에 소재한 모 대학의 신학교수로 일하며 필자를 만나 베트남에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베트남의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그들의 영육간의 필요를 채우며 

성경을 가르치고 훈련을 돕는 귀한일을 하고 계신분이었다.

이 목사님의 부친도 목사님으로 베트남에서 지하교회를 세워 섬기던 중 

갑작스럽게 교회가 부흥하여 숫자가 늘어나게되자 당국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공산당 당국의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핍박으로 교회를 더이상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이제는 지하교회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하여 그 아버지와  어머니도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버지 어머니 아들 세사람이 본격적으로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필자도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건강을 검진하며 상담하고 치료하는 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돕기로 하고 여정을 시작하였다.

베트남의 호치민의 한 허름한 호텔 그 주인이 지하교회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한다.

그 옥상 전체를 예배처소로 제공해주어서 리더 훈련과 주일예배를  드릴수 있다고 한다.

매일 그 호텔의 옥상에 환자들이 모이고 리더들을 비롯하여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오면 그들을 치료하고 상담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필자의 하는 일이다.


그날도 역시 모여온 환자들을 치료하던중 함께한 투(Tu) 목사님은 

필자가 치료하는 동안 계속해서 작은 소리로 환자들 사이를 오가며 중보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필자가 치료에 집중하는 동안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기도해 주는 일은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지하교회의 청년들이 방문하여 한쪽에서는 계속하여 기도와 찬양이 이어지고 

한편에서는 주님의 긍율히 여기심을 빌며 치료를 이어가던중

필자의 머리속에는 새로운 형태의 부흥 집회를 연상케 된다.

주님의 치료하시는 은혜를 기대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치료하는 동안 찬양하는 청년들>

<모두 앉은 자세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치료하는 동안 중보기도에 열중하는 성도들>


 이제 모든 모임을 마친후 세 청년의 간증한 내용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영광을 돌리게 된다.

치료를 받던 이들가운데 세 청년이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었는데…

치료를 다 마친후에 투(Tu) 목사님께 치료받던중 자신에게 일어났던 심령이 변하게 된 경험을 간증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을 다 돌려보낸 후에 투목사님께서 필자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작은 머리와 생각으로는 측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 세청년의 간증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자신은 예수님을 알고는 있지만 믿을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치료를 받는 순간 특별히 머리에 침이 들어가는 순간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는 강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늘부터 나의 모든 생명을 그분 예수님께 드린다는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신앙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 만으로는 불가능 한것이다.

성령님의 감화와 만져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세례라고 말한다.

다양한 모습으로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놀라운 주님의 섭리에 머리숙여 감사하게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에게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다.

하나님을 찾을 만한 그 어떤 빛도 없는 흑암 그 자체인 인생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하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깨닿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니…

이 청년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하는 지하교회모습1>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하는 지하교회모습2>

<가정교회에서 치료하는 모습> 

<이웃에서 필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한 반신불수 환자>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하는 지하교회 예배모습>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하는 지하교회모습3>

베트남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당국에 등록된 교회와 다른 하나는 지하교회(underground church) 이다.

이제 자리를 옮겨 지하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치료를 시작했다.

베트남의 지하교회는 외관상 평범한 가정집 모습을 하고 있다.

간판도 없고 십자가도 없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교회당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도시에는 감시가 다소 느슨하여 모임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농촌으로 들어갈 수록 감시가 심하고 핍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도시에 있는 교회들은 방문이 가능하고 설교도 은밀히 할 수 있지만 농촌에는 들어갈 수 조차 없다.

만약 필자가 농촌 지역으로 들어가 그 지역 교회지도자를 만났을 경우 

필자의 경우 미국의 여권를 가지고 있으므로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지만 

남아있는 지도자들에게는 심한 핍박이 시작된다고 한다.

정도에 따라 1개월에서 1년까지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벌금을 물리기도 하며 때에 따라 지도자들의 자녀들에게 심한 매질까지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 하였던 도시들>

<이 달랏(Da Lat)이란 마을에서 필자가 묶는 호텔로 나온 시골 마을 지도자들>

<칸토(Can To)라는 도시의 정경>

<열악한 화장실의 모습>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삼아 매우 복잡한 교통사정>

호치민에서 북쪽으로 달랏(Da Lat)이라는 곳까지 12시간을 이동하던중 경험하였던 그 아찔함…

거리상으로 7-8시간에 불과하지만 험한 교통 사정으로 12시간을 달려야했다.

2차선 도로 이기에 추월하기 위해서 감수해야하는 그 위험들… 큰 트럭과 마주쳐 달리며 생명을 위협당하는 순간 들이다.

어두운 밤길 이름 모를 짐승을 치고 나가야했고… 

어두워 공사중인 도로를 모른채 한껏 달리다가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같은 느낌도 경험 해야했다.

다시 무난히 잘 달리나 싶더니 갑자기 나타난 넘어진 가로등을 만나 그것을 치고 나가던 중 질럿던 외마디들…

늘 모습만 다를 뿐 선교현장에서는 각오해야하는 위험 들이다. 

우여 곡절끝에 12시를 넘겨 도착한 곳에서 여장을 풀고 다음날 근처의 오지 마을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건강을 검진하고 상담하며 이어지는 환자들을 치료한다.

이곳은 더욱 핍박이 심한 지역으로 그 지도자들 및 환자들을 필자가 묶는 호텔로 불러내어 만나야 했다.


베트남… 그곳은 아직도 복음에 자유롭지 못한 핍박이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선교사의 수도 극히 제한적이고 선교사의 이름으로는 사역할 수 없는 곳.

사업가나 그외 다른 직함으로 위장하여 선교사역을 해야하는 곳이다.

그런 목적을 염두에 두었었던지 함께 하였던 그 투(Tu) 목사님은 필자를 칸토(Can To)라는 남쪽의 한 도시로 안내하였다.

필자의 아는 바와는 달리 베트남에서는 두번째 큰 도시란다.

그곳의 제일 큰 대학의 총장을 만나러 간다 는데 

이유는 혹 필자가 베트남의 중의학과 대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통하여 선교사역을 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란다.

총장실에서 그곳 의과대학장과 함께 만난자리에서 약초들과 침술에 관한 영어로 된 정보들을 약 1시간 반 동안 브리핑 하였다.

모든 내용을 들은 총장과 의과대학장은 필자에게 만약 베트남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쳐준다면 모든 편의를 다 제공 하겠단다.

그 말을 들은 투목사님은 베트남선교를 위한 정말 좋은 기회이니 이번에 논의된 내용을 잘 발전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또 다른 사역의 장을 넓히시는 것일까?

필자는 즉시 대답할 수 없어 남은 일들은 진중히 생각할 기회를 달라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복음, 그 내용의 진실을 안다면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던지 이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주님의 12 제자들 중 11제자들은 이 복음을 전하던 중 모두 순교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목숨을 대신 내놓으면서 해야할 이 고귀한 사역을 접하면서 

움츠리고 머뭇거리는 필자의 모습이 한없이 작고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복음전하는 일인 이 선교 사역의 패러다임이 

공산권이나 모슬렘지역에서는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아울러 하게된다.

모슬렘 지역이나 공산권 나라에서의 선교사역에서 예전의 방식 

즉 교회들이 지원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사역하는 모습도 있어야하지만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립하여 사역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처음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면서부터이다.(행18:2)

그 일로 동역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은 당시에는 상당한 고급 노동력 이었다 고 보인다.

귀족들을 상대하는사업인 별장역할을 하는 천막 만들기로 짧은 시간에 큰 물질을 만들수 있었다한다.

그로인해 제공되는 시간의 여분으로 복음사역에 더욱 전염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선교를 위한 더욱 전문적인 분야의 헌신자들이 요구되는 때라고 여겨진다. 

더우기 공산권이나 모슬렘 지역이면 더더욱 그들이 꼭 필요로하는 전문분야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동중에 투(Tu)목사님이 돌보시는 한 고아원을 방문하여 교사들과 함께 촬영>


<고아들의 한달 식량>

<버려진 고아들의 잠자리>

<고아원에서 치료받은 어린 아이와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