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2)


베트남의 호치민 탄션녓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접하게되는 공산당 군 관계자들의 태도는 매우 불손하게 느껴졌다.

유럽등지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들의 그러한 무례한 태도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들의 태도를 보며 공산 치하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하는 성도들의 삶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았을까?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당국으로부터 여러 불이익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텐데…

교회란 간판조차 내걸지 못하는 지하교회(underground church)와 등록된 교회(Registered church)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존하는 교회형태이다.

필자가 방문하였던 교회는 전자에 속하여 외부에는 간판도 없다.

이들 교회지도자들이 필자를 픽업하기 위하여 왔을때 모터사이클을 타고와서 뒤에 타라고 할때면 

어찌 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게된다.

미국에서 교통상 절대 안전위주로 생활하다가 모터사이클 뒤에 타는 일도 익숙치 않고, 혹 타국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미국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처지나간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타게 된다. 

미국에서는 못할 새로운 경험이라 걱정도 되고 스릴도 있다.


성도들을 만나면 이들 중에는 필자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온 주변의 믿지 않는 이웃들도 있다.

이런 저런 아픈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 온 환자들을 만나 강의도 하고 진찰도 하며 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

왜 이런 통증이 생겼으며 어떻게하면 이런 질고들을 피할 수 있을지 등을 강의한다.

레위기 11장의 말씀을 예로 들면서 우리 시대에도 역시 먹지 말아야할 먹거리들을 열거하며 일러준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왜 이토록 구체적으로 먹어야 할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열거하고 강조하셨을까?

오늘날 현대의 과학적인 언어들로 설명하였을때 그들이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단순한 명령의 형태로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믿어진다.

필자를 찾는 환자들을 대하는 접근 방법은 레위기 11장에서 기록된 그 방법을 도입한다.

2절에 “육지 모든 짐승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이 음식에 대한 절제에서 건강이 시작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한다.

현대의 거의 모든 질고들은 먹지 않아야 할 것을 절제치 못하고 섭취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모든 강의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면역이라는 가장 위대하고 힘있는 의사를 우리 몸 가운데 두셨다는 것이다.

그 면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만 한다면 당하지 않아도 될 많은 질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들은 땅의 건강한 소산물들이며 성경에서 허락한 열거된 짐승들이다.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마치면 치료가 이어진다.


오늘은 이교회 내일은 저 교회를 방문하면서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하는 중에

필자는 지난 16년동안 사역한 내용들을 소개하며 설명하기시작하였다. 

아프리카와 필리핀 인도 등지에서 만나 치료하였던 청각 장애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 하던중

온 교회 성도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그 청년이 청각 장애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설교를 마친후에 그 청년을 앞으로 불렀다.

그 청년은 13세때에 심한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거기서 강한 항생제를 투여받아 고열은 내렸지만 그 이후로 청력은 모두 잃고 말았다고 고백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인도의 청각장애자의 수는 약 600만명에 달하고 필리핀은 약 250만명이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의 형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유추해본다.

한 인도의 부자 사업가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왜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 청각 장애자들이 많을까?”

실제로 필자가 인도 비사카파트남및 콜커타 순더반지역등을 방문하였을때 마을마다 청각장애자학교 간판(School for the Deaf)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업가는 자신의 사재를 들여 많은 연구원을 고용하여 역학 추적조사를 시작하였다.

오랜 시간 연구끝에 모든 자료를 종합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 항생재의 무리한 투여가 청각장애의 원인이었다.

이 시대에 약물을 남용함으로 말미암는 부작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아도 범람하는 각종 환경호르몬들, 화학약물등 오염물질들이 음식과 공기등을 통하여 몸의 면역기능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데…

게다가 부작용이 많은 약물을 오용하거나 과다투여하여 몸의 방어기능을 무력하게 만드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불행을 당하는지…

우리는 이 점에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하며 우리의 몸에 들어오는 많은 불량 음식들을 막아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서 채취되는 과일이나 채소 곡물등을 섭취하는 일로서 현대에 명명된 많은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 청년을 앞에 불러 눕혀 치료를 시작하는데 온 교회 교인들이 필자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어 앉아 떠나지 않고 지켜본다.

필자가 혹시 이런 선교여정에서 “치료를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어찌할까?” 염려하며 치료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 여정을 시작하기 16년 전부터 견지하던 생각과 믿음이 있기에 그 청년을 앞으로 불러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에게 치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치료가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청각장애자들을 치료할 때 약간 호전되던 전혀 호전되지 않던 필자의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없다.

단지 만나는 환자들을 긍율히 여기는 마음속에 우리 주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만져주고 치료하는 중에 

그동안 필자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치료를 시작하며 둘러앉아 주시하고 있는 교우들을 향하여 이 점을 분명히 밝히며 혹시 있게 될 오해가 없기를 당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청년 역시 치료를 시작한지 40분이 지났을때 약간 들리기 시작한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한다.

귀 주변에서 손바닥을 쳐보고… 목소리로 확인도하면서…여러가지 방법으로 청각의 정도를 점검하면서….

어떻게든 이 청년이 들리기 시작한다면 즉 조그만 변화가 시작되었다면 큰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청년이 점차 회복되어 그 청각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이 필자가 가장 원하는 바이다.

이번 베트남 여정에서 또 한번의 기억에 남는 여정이 있었다.


한 빈민가의 가정교회를 방문하여 이웃 주민들을 초대하여 치료를 시작하였다.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 어떤 할머니와 딸이 방문하여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심하다며 도와달란다.

이때 그 교회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있었던 청각 장애자를 치료하였던 일을 소개하였다.

마침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와 딸이 자신의 아들을 당장 데려와야겠다며 일어섰다.

그 할머니는 손자와 딸이 교회를 출석하며 예수님을 믿는 것에 심한 불만을 쏱으며 한 평생 핍박하며 교회 출석을 만류했다고 한다.

약 한시간이 지난 저녁 8시경 딸이 아들과 함께 도착하였다.

아들은 24세 청년이었으며, 역시 간난아기였을 당시 고열이 있었고 항생제를 투여한 후 청력을 모두 잃었으나 

오른쪽 한  귀는 아주 작은 약 15프센트 정도 듣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엄마는 아들이 13세쯤 되었을때  말을 듣지 않고 화를 치밀게 하는 짓에 뺨을 심하게 후려 갈겼다.

그 후 그 아들은 그나마 아주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한 쪽 귀마저 청력을 잃어 완전히 못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정을 전해들은 필자의 마음이 안타까워 할머니와 딸 그리고 손자를 앉혀놓고 치료하기전에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할머니가 주일마다 교회출석하는 일을 방해하였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핍박을 계속하였는데…

필자는 “할머니 이제 제가 당신이 사랑하는 손자의 청각을 치료하려고 합니다. 이제 치료 전에 나와 당신의 딸 손자가 믿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한 후에 시작할 것인데 우리와 함께 우리의 신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함께 해 주실 수 있겠어요?”라고 부탁하였다.

이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망설이다가 결국 ”네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 대답을 들은 필자는 할머니와 손자의 손을 포개어 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기도를 시작하며 아들을 위하여 엄마와 할머니 온 가정을 위하여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던 중

엄마의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슬픔과 서러움이 북받쳐 필자가 듣기에 뱃속 깊은 내장이 끓어 오르는 듯한 신음소리같은 흐느낌이 계속되었다.

지난 24년동안 아들과 얽힌 마음 아팠던 사연과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을 것이며…

그나마 들리던 한쪽귀마저 자신이 심하게 뺨을 후려갈기므로 못듣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팟을까?


이제 기도를 마치고 할머니와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료를 시작하였다. 

이 청년 역시 치료후 약 40분이 지났을때 비로서 들리기 시작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 청년은 모든 치료를 다 마친후에 필자와 사진을 찍기를 원한다며 자신의 쎌폰을  꺼내 한 컽을 찍으며 하는 말이…

"제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은 후에 내가 할 일이 무었을까를 기도하며 찾던중…

나와같은 청각장애자 청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여 그들과 SNS를 통하여 만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교제를 하는 모임을 만들어 이제는 약 40여명이 되었습니다..

혹시 내년에 베트남을 다시 방문하면 이 친구들을 모두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 

필자는 대답하기를 “내년에 다시 방문할테니 그 청년들을 다 모아 강의도 하고 치료도 하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봅시다.”라고 말하며 

그날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다.


인도와 필리핀의 청각장애자들이 그렇게 많다면 베트남의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듯 많은 장애자들은 어떤 회복을 기대하거나 꿈을 꾼다는 일은 없다.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여 사는 일 이외에는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결단코 포기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실제 회복된 사례들이 많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경험들을 하며 눈길을 청각장애자들 세계로 돌려 그들을 돌아본다고 해도 죽을때까지 죽도록 이 일을 한다해도 표시가 날까?

별 표시도 흔적도 없을 이 사역이지만 오늘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은혜를 되새기며

말없이 이 길을 계속 걸어야함을 다짐해 본다.


<고아원의 어린이를 치료하는 모습>

<치료를 마치고 근처 목회자 부부들과 길거리 음식 식사>

<강도를 막기위해 사용하는 자물통들>

<지하교회 주변 모습>

<미토란 지역의 한 고아원 >

<호치민의 지하교회 >